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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의 축구화 히스토리

축구 히스토리

by BlackOUT★ 2020. 4. 2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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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디자인하다.

 

안녕하세요. 디자이너 BlackOUT'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제품 리뷰가 아닌,

2002한일월드컵에 있었던

흥미로운 축구화 히스토리를 알려드릴까 합니다.

 

 

 2002한일월드컵 최고의 이슈는 두말 할것 없이,

"대한민국의 4강진출" 일 것입니다.
반면, 대회 최고의 인기스타는 단연,

이 선수 일텐데요.

 

 

 조각같이 잘 생긴 외모에 뛰어난 축구실력을 가진

데이비드 베컴은 그 당시 전세계적인

인기스타였습니다.

하지만, 베컴이 2002월드컵 출전이 불투명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이 이야기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당시 24살이었던 베컴은 소속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의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잉글랜드대표팀에 뽑히게 됩니다.

 

 

일명 퍼기의 아이들 중 한명이었던 베컴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프로데뷔를 하고 활약하면서,

잉글랜드축구의 미래로 평가받고 있었는데요.

 그 만큼, 국민들은 다가오는 월드컵에서 그가 활약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본선 조별예선 1,2차전 모두 베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글렌호들 감독

 

"베컴은 대회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
-

 당시, 잉글랜드대표팀 감독이었던 '글렌호들'

이렇게 공개적으로 베컴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잉글랜드의 국민들은 격분했고,
베컴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 합니다.

 

 

 다행히, 예선 3차전 콜롬비아전에 선발 출전한 베컴은 전매특허인 프리킥골을 작렬 시키며, 여론의 분위기를 잠재우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16강 아르헨티나전에서

발생하는데요.

 

응 퇴장이야 나가

 

 2:2로 팽팽히 맞서고 있던 후반 1분, 시메오네의

거친 태클에 보복성 발길질을 한 베컴은

결국, 퇴장을 당하고 맙니다.

경기결과는 승부차기 끝에 아르헨티나의 8강 진출.

 

 

잉글랜드 국민들은

"베컴이 잉글랜드 탈락의 원흉이다"

라고 책망하기 시작했고, 영국의 대표 신문사

'데일리미러지'는 정중앙에 그의 사진이 붙은

다트판을 인쇄까지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살해협박까지 받았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국민들과 여론의 뭇매의 대상이 되었던,

"베컴을 다시는 대표팀에 뽑아서는 안된다"

말까지 들어가며, 묵묵히

98-99시즌을 준비합니다.

 

 

 베컴은 시즌 개막경기부터 프리킥 골을 작렬시키며, 들끓었던 여론을 조금씩 진정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절치부심한 베컴은 역대급 시즌을 보내게

되는데요.

 

 

리그우승, FA컵우승, 챔피언스리그우승.
맨유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시즌으로 평가 받는 98-99시즌 트레블을 달성하고 발롱도르 2위까지 선정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환상적인 시즌을 보낸 베컴은 그 해,

세계최고의 인기걸그룹 '스파이스걸스'의 멤버

'빅토리아'와 결혼을 합니다.

이 모습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많이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 결혼을 기점으로 베컴은 그 전에

'철없는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떼고, 점점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99-00시즌부터 베컴은 긴머리를 정리하면서 외모적으로나, 경기장에서나 성숙한 모습으로 지난 시즌에 이어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10월 6일..
지금도 매년 10월 6일이면 잉글랜드 국민들이 찾아서 본다는 베컴 커리어 최고의 프리킥을 성공 시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월드컵 본선 조별예선 1,2차전 모두 베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베컴 팬이라면 이 사진 한장만 보셔도

잘 아실 텐데요.

월드컵 유럽예선 마지막 경기인 그리스전을 패배한다면 1위자리를 빼앗기고, 무승부만 하더라도 조1위로 월드컵 본선직행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1:2로 지고 있던 후반 90분,

잉글랜드는 마지막 프리킥 찬스을 얻게 됩니다.
베컴의 발을 떠난 공은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골망을 갈랐고, 올드트레포트에 모인 수많은 잉글랜드관중들은 베컴에게 열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날, 베컴은 16.1km를 뛸 정도로 엄청난 활동량과 집중력을 보였으며,

1골1도움을 기록하는 최고의 활약을 펼칩니다.

저는 이 경기를 보면서 베컴이 지난 98월드컵에서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고자 하는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또한, 이날을 계기로 베컴에게 등을 돌렸던

많은 잉글랜드 국민들과 여론은

베컴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

하지만, 기쁨도 잠시..

 

 

 2002년 4월 10일. 스페인 데포르티보와의 UEFA챔피언스리그 경기에 나선 베컴은 '중족골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당하고 맙니다.

전치 8주 이상의 부상을 당한 베컴은 월드컵이 한달여 밖에 안남은 상황에서 절망하게 됩니다.

이 부상이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베컴에게 부상을 입힌 선수가 월드컵 본선예선 같은 조에서 만나게 될, 아르헨티나선수였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아르헨티나축구협회에서 이 선수를 매수 했다는 말까지 있어, 잉글랜드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잉글랜드 국민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 팬들이 베컴의 월드컵 출전여부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토니 블레어(당시 잉글랜드 총리)

 

"월드컵 대회 준비과정에서

베컴의 발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

 당시 예산안 결정 의회를 진행중이 었던, 블레어 총리가 대변인을 통해 언론에 발표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베컴의 월드컵 출전여부를 걱정하는 나라는

잉글랜드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월드컵을 기다리는 전 세계 모든 팬들이 걱정을 했겠지만, 가장 속이 타들어갔던 나라는 바로..

 

안돼!!!!!!

 

 모든 예선경기를 일본에서 치룰 예정이던,

잉글랜드 대표팀을 기다리던 일본팬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당시,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의 언론에서도

베컴의 몸상태에 대한 기사를 매일 보도 할 만큼,

그의 회복 여부가 주목을 받았는데요.

아무래도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베컴 본인이었을 것입니다.
산소캡슐에 들어가는 치료를 병행하면서,

회복에 피나는 노력을 한 베컴은 전세계 팬들의 응원에 부응하듯, 극적으로 회복에 성공합니다.

 

 

"당신의 발 상태의 맞는

최고의 축구화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디다스와 일본은 공동으로 베컴축구화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하는데요.
월드컵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드디어 아디다스는 오직 베컴만을 위한 축구화를 완성하게 됩니다.

 

 

총 14켤래를 준비해 주었는데, 이 축구화의 한켤레 가격이 무려 2000만원, 총 3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

"부상부위의 보호는 물론이고,
길들일 필요 없이, 바로 경기에 신고 나서도 되는,
오직 베컴만을 위한 축구화를 만들어 냈다"

 

 

정말 멋지지 않나요?

그 당시, 닭벼슬머리와 베컴의 시그니처와 같은 축구화착용법은 엄청나게 유행했었으나, 그 누구도 쉽게 소화하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 합니다.
그렇게 다시 만난 베컴과 아르헨티나.

 

 

4년전 자신을 나락까지 끌어 내렸던 선수와

다시 마주한다 것이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베컴은 경기전부터 웃음기 하나 없이,

결의에 찬 모습으로 경기장을 뛰어 다녔고,

드디어 복수의 찬스가 찾아 옵니다.

 

포체티노 "아니야 아니야!!"

 

네,맞습니다.아르헨티나의 4번 선수는

우리가 알고있는 포체티노가 맞습니다.

 

응 PK맞아

 

단호한, 콜리나 주심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PK선언을 합니다. 느린장면으로 다시 봤을 때 오웬의 '헐리웃액션'으로 보여 논란이 있었지만, 당시 VAR이 없던 시절

"오심도 축구의 일부다"라는 분위기로 인해

더 이상 논란은 커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베컴의 간지가 폭발 합니다.

 

 

저는 이 경기를 생방송으로 봤는데요,
세러머니가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지난 월드컵의 서러움을 폭발시키는 듯한
베컴의 PK골은 완벽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어웨이 유니폼과 머리색, 그리고, 샴페인골드 색상의 고급진 축구화까지 정말 모든게,

멋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모습 속에 숨겨진,
지난 4년간의 히스토리를 생각하니, 베컴의 팬으로써 가슴 찡한 순간이 었습니다.
-
이때 나왔던 아디다스CF 슬로건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P.S>

번외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당시 아디다스의 프레데터 매니아 '샴페인 골드' 색상은 대회가 끝나고 출시하였는데요.

하지만, 아디다스에서 월드컵에 출전하는 단 5명의 선수에게 이 색상을 지급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도 많이 있었으나, 신기한 것은 월드컵에서 정말 아래 언급해드릴 5명의 선수만 이 샴페인골드색상을 착용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사실여부를 아시는 분은 댓글 남겨주세요^ ^

첫번째
선수는 당연히 데이비드 베컴이구요.

 

 

두번째 선수는 이탈리아의 알렉산더 델피에로입니다.

 

 

세번째 선수는 스페인의 라울 곤잘레스

 

정말 그냥 라울이네요..

 

 네번째 선수는, 대한민국의 박지성선수.

 

 

박지성 선수는 4강 독일전까지는 검빨색상을 신었고, 마지막 터키와의 3,4위전에만 이 색상을 신었습니다.

 

다섯번째 선수는 조금 의외였는데요.

대한민국의 최태욱 선수였습니다.

 

 

 역시 이 색상이 제일 어울리는 선수는 베컴이네요.

 

 

 

 

 

오늘의 포스팅은 여기까지입니다.

제품리뷰가 아닌 히스토리로 포스팅 해봤는데

재미있게 보셨나요?

처음이라 조금 어설픈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 축구화와 관련된 히스토리도

더욱 알차고 재미있게 준비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 디자이너 Black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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